래리 코헨 감독의 영화 ‘그것은 살아있다’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검은 화면은 흰 점으로 뒤덮인다. 그것들은 배양된 세균 같기도 하고 또 때로는 우리 몸을 끝없이 파먹고 짓무르게 하는 벌레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음악과 함께 등장한 이 흰색 덩어리는 어쩌면 암세포일지도 모른다는 암시 또한 풍기지만, 이내 그것은 플래시 불빛과 뒤섞이고 만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서 알 수 있듯 이는 하수구를 휩쓰는 경찰들을 플래시 불빛이다. (more…)
영화
6월 2일. 하늘이 어둡다.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그냥 검다. 그뿐 아니다. 천둥 또한 끊임없이 몰아친다. 혹시나 이마저 신적 계시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마저 든다. 요즘 사회가 그렇다. 많은 이들이 80년대로 돌아갔다면 혀를 찬다. 불안, 걱정, 초조. 무속에 기대려는 이들이 많을 걸 탓할 게 아니다. 앞날이 오늘처럼 깜깜하기만 한데 기댈 곳이 없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미래를 비관한다. 이는 오늘에 맞닿은 어제가 비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80년대, 혹은 80년대까지다. 그리고 소수에겐 바로 어제 일이다. (more…)
한 사내가 있다. 매우 폭력적인 인물이다. 우리가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널리고 널린 양아치와 같다. 그러나 그는 영화가 다루는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러한 인물이 만들어진 기원을 설명한다. 그 기원에는 폭력이라는 원인이 있다. 그리고 폭력은 원치않는 살인과 사고를 낳는다. 이러한 살인과 사고는 가족의 소멸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우연과 필연이 겹친 이 사고로 사내는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입은 채 홀로 성장한다. 이렇게 홀로 성장한 사내는 타인과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소통 방식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가장 동물적인 방식을 택한다. 바로 폭력이다. (more…)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잘 만든 팬 서비스 영화다. 게다가 ‘스포일러’ 따윈 없는 영화다.
영화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봤다면 다 아는 익숙한 세계다. 그러니까 기존 세계관을 파괴하지 않는 적정한 선을 지킨다. 그러므로 영화의 대결은 찌질한 존 코너와 역시 찌질한 스카이넷의 대결이 된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네 개의 세계를 가진다(3편은 제외). 사이버다인이 만들어낸 터미네이터의 세계가 있고, 저항군 지도자가 되는 존 코너의 세계가 있다. 여기서 사이버다인이 보낸 암살자를 막고자 카일 리스를 과거로 보내 만나게 되는 사라 코너의 세계가 있고, 사라 코너에 의해 미래를 추체험한 존 코너의 세계가 있다. 각각은 비슷한 양상을 띠지만 서로 다른 세계다. 존 코너는 오로지 사라 코너의 구술에 의존한다. 사라 코너의 체험 역시 ‘터미네이터’라는 존재를 제외하면 카일 리스의 구술에 의존해 있다. 당연하지만, 원조 존 코너의 21세기와 교육받은 존 코너의 21세기는 다른 세계다. 그러니까 존 코너가 미래를 아는 순간 사라 코너가 알던 미래는 바뀌어버렸음에도 존 코너는 어머니의 구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영화에서는 존 코너가 어머니의 구술에 등장하지 않는 터미네이터의 등장에 당혹스러워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얼마나 단순 무식한가를 드러낸다. 가설(사라 코너)에 테스트 명제(뉴 터미네이터)를 단순 무식하게 대조하는 존 코너야말로 녹색성장에 대운하를 끼워 맞추는 모 수장 꼴이다. 이에 반해 스카이넷은 이보다 조금 낫다. 존 코너의 탄생이라는 현 문제가 있고,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의 결합이라는 미래이자 동시에 과거인 문제가 있다. 물론 존과 카일 둘 다 죽여버리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래서 암살순위 1, 2번이 카일과 존이다. 역시 단순한 게 명확하다. 문제는 ‘마커스’의 등장이다. 스카이넷은 T800이 실패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설정 상 아직 타임머신이 만들어질 시기도 아니다. 그래서 최고의 스파이를 만든다. 자신이 스파이인지 모르는 스파이야말로 최고의 스파이다. 그리고 바로 그게 문제가 된다. ‘토탈 리콜’의 터미네이터 아놀드가 보여준 바로 그 문제다. 마커스의 심리는 철저하게 인간세계와 동화돼 있다. 게다가 그의 정신은 여전히 20세기를 산다. 그런 그가 듣보잡 스카이넷을 좋아할 리 만무하다. 영어만 잘하면 장땡이라거나, 삽질만 잘하면 된다는 아메바적 혹은 기계적 사고를 사회 논리에 대입한 결과다. 스카이넷은 이번 기회를 반면교사 삼아 분발했으면 한다. 아무튼, 이 두 찌질이의 대결에서 빛나는 건 단연 마커스다. 새로운 터미네이터 영화를 한마디로 하자면 이렇다. 마커스 너 짱이다!
알드리치는 그의 마지막 영화로 레슬링을 선택했다. 왜 레슬링일까? 레슬링은 여타의 많은 스포츠가 그러하듯이 육체와 육체가 충돌하는 것을 볼거리로 삼는다. 레슬링은 이러한 스포츠 가운데 쇼의 성격이 가장 강한 장르다. 게다가 여성 레슬링이다. 영화의 제목은 《…All the Marbles》, ‘캘리포니아 돌스’는 레슬러팀의 명칭이다. ‘캘리포니아 돌스’, 야자수 아래 비키니를 걸치고 몸매를 뽐내는 여성들이 연상되는 이름이다. 실제로 레슬러의 복장 역시 그리 다르지 않고, 미모를 과시한다는 차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이 이름은 ‘희망’ 사항이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