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맨이 돌아왔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기위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겠지만 수퍼맨은 여전히 호감가지 않는 캐릭터이다. 너무나 순수하고 순진하며 착한 정의의 사도. 그는 어떤 악당도 죽이지 않고 완벽에 가까우리만치 강하며 니체의 초인超人에 관한 가장 무자비한 캐리커처이다. 순수와 순진은 무지無知와 독선에 훨씬 가까우며 무지하며 독선에 빠진 자가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부시.
수퍼맨의 제 2의 고향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풍경을 담아낸다. 하지만 원작자가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남부 촌놈’을 지칭하는 ‘Redneck’과 수퍼맨의 ‘빨간 망토’가 겹쳐 보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프랭크 밀러’는 『Batman: The Dark Knight Returns』에서 수퍼맨을 정부의 앞잡이로 묘사한다. 늘 하층민과 싸우며 죄의식을 짊어진 불운한 부르조아 배트맨과는 달리 포근한 전원(물론 TV판 스몰빌은 예외)정도로 생각되는 농촌 출신의 수퍼맨이 가족과 국가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초기 히어로인 수퍼맨이 아니라 이후에 등장하기 시작한 히어로들이 점점 더 어둠에 이끌리고 사람들 또한 ‘다크 히어로’에게 열광하는 건 세상이 그만큼 아름답지도 녹록하지도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제 수퍼맨에게 기대하는 건 단지 “더 거대한 파괴의 스펙터클 뿐”이다. 작용에 반작용이 따르는 건 당연한 이치, ‘정의’가 강해지면 그만큼 ‘악’도 강해지지만 실은 정의가 정의였던 적은 없었고 악이 악이었던 적 또한 없었다. 때문에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며 뛰어난 ‘히어로’는 오직 《다크맨 Darkman》뿐이다.
초인을 꿈꾸는 세상은 이미 글러먹은 세상인거다.
2006년 6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일해야겠다.〉 생각하고는 2년 전 오늘 썼던 조악한 글을 열어봤습니다. 2004년 2월 23일, 난 매우 화가 나 있었더군요. 것도 그럴 것이 모두의 반대를 무시하고 침략전쟁에 대량의 군인들을 파병한 이후 첫 번째 희생자인 ‘김선일 씨’가 살해당한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그 글에는 「학살을 방지하기 위한 파병」이란 논리로 글을 썼다고 기억되는 〈서프라이즈〉의 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헛소리를 다시 볼 필요 따위는 없을 테고, 얼마 전에 봤던 애니메이션 《최종병기 그녀》에서의 한 토막을 떠올리는 게 정말로 유익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극중 ‘슈우’의 친구는 그가 사랑하는 ‘아케미’를 지키기 위해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하러 떠난다고 합니다. 이에 격분한 슈우가 분노를 터뜨리며 말하지요. “군인(전쟁)은 사람을 지키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 전에 ‘슈우’를 만나러 가던 ‘치세’의 앞을 막아선 군인들을 향해 ‘치세’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또 이렇게 말합니다. “동료? 내가 여기서 당신들을 죽인다고 해도 ‘병기’의 입장에서는 덜 죽이느냐, 더 죽이느냐의 차이 뿐”이라고 말이죠. 온통 애정만세로 뒤덮여 있을 것만 같은 이 애니메이션은 결국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끕니다. 애니메이션 속 대사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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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부분이 FTA라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이 말하고는 하지만 약간만 깊게 들어가도 그들 대부분이 ‘찬성’의 입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입장에는 별다른 이론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FTA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TV와 종이신문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그 한결같음으로 인해서)미디어로부터 받아들인 국익과 경제성장이라는 일률적인 반응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가 잘 살게 될 거라는 믿음은 매우 오랜 시간동안 쌓여져온 믿음이다. 이 믿음에는 약간의 의심을 첨가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FTA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걸 왜 반대해야 하는지는 아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FTA 협의 내용의 전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문가들 역시 그들의 영역을 벗어나는 부분은 실재로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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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잠드는 시간에 출근하는 건 고역이다. 잠을 자기 위해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읽으며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조르주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을 꺼내들고 서문을 읽었다. 그리고 출근, 직장에 도착한 아침 일곱 시는 보통은 내가 잠이 드는 시간이다. 그런데 예전과 다르게 출퇴근 시간의 변화가 심할 때는 몸이 버텨내질 못한다. 불과 한해 전만 해도 하루 세 시간의 수면이면 충분했었고 새벽에 출근하건 새벽에 퇴근하건 딱히 못 견디게 피곤하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번 주처럼 새벽에 퇴근하는 날과 아침에 출근하는 날이 겹치는 주에는 한 주의 생활이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그리고 결국 게을러지고 나태해진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소비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멍청히 하루를 보낸다.
그제는 직장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아까워 직장에 놓여있는 송두율 선생의 책 한권을 내 책상으로 슬며시 옮겨다 놨지만 여직 목차만 봤을 뿐이다. 쌓여가는 피로는 사람을 점점 게으르게 만든다. 아, 밥(을 포함한 먹는 행위)을 먹는 걸 귀찮아하는 내 성격도 몸이 무너져 가는데 한몫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게으름으로 인해 배우지 않고 익히지 않는 것은 나를 죽이는 짓이다. 죽음(고다르의 말처럼)과 달리 살해(육체건 정신이건)는 몹시도 비열한 짓이다.
무지(無知) 「명」「1」아는 것이 없음. 「2」미련하고 우악스러움.
무지(無智) 「명」지혜나 꾀가 없음.
무식(無識) 「명」배우지 않은 데다 보고 듣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음.
識(식)과 知(지)
識(식) ①사물의 시비를 판단하는 작용 ②오온(五蘊)의 하나. 사물을 인식ㆍ이해하는 마음의 작용
知(지) ①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②성(姓)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