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 생각의 가장 아랫단을 정리하다.
2006년 8월
이건 ‘국가’가 아니다 - 박래군
������ 지식인은 왜 하중근씨의 죽음에 대해서 침묵하는가? - 우석훈
모리타 어민의 죽음 - 박노자
힘있고 가진 놈들은 소드방놀이 한 판으로 더 힘있고 더 큰 자리로 옮겨가고 돈 없고 빽 없으면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1백년전 미국 농무부 공무원이 한중일에서 발견한 놀라운 비밀] - 레디앙
위의 기사를 읽고 ‘똥’에 관심이 생긴다면 조셉 젠킨스의 [똥 살리기 땅 살리기]라는 책을 권한다. 아주 재밌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겠지만 점점 두엄이니 퇴비니 똥구덩이니 하는 것들이 사라져 간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농경지대의 사람들은 모든 유기물을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낼 줄을 알고 있었다. 석묘(石墓)와 흙무덤의 차이는 결국 삶의 태도와도 같다. 땅과 어울려 살았던 사람들이 윤회(자연의 순환)를 믿었던 반면 육식을 주로하며 소모에만 익숙해있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으로 보았다. 때문에 영혼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고 믿었다. 어쨌거나 레디앙의 기사를 읽으면서 슬펐던 것은 예전의 올바른 삶의 태도를 버리고 지금의 우리는 점점 소비만 하는 삶의 태도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건설자본의 투기가 있다. 농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을 지워하자고 하면서 부수고 쌓아올리면서 생기는 이익에만 집중한다.
똥의 중요성에 귀 기울이는 것은 삶의 태도를 다시 바로잡자는 것이기도 하다. 땅의 중요성, 자연의 중요성을 얼마만큼 인식하는가는 같이 어울려 살아가자는 민주주의에 부합되기도 한다. 여기에 천규석의 [쌀과 민주주의]라는 책을 권한다.
시네바캉스, 말이 좋아 바캉스지 너무 더웠다. 전체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볼 때는 그깟 더위 따위 다 잊어버렸지만 영화가 끝나면 찾아오는 그 끈적한 더위, 사실은 〈블루벨벳〉의 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도 불쾌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영원히 순환하는 악몽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그 끔찍한 영화의 매 순간순간마다 실소를 터트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관점의 차이, 세월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로라 던’의 절규에서 터져 나왔던 웃음은 정말로 불쾌했다. 사람의 외모에 대한 태도는 점점 더 끔찍해지고 잔인해진다. 진심으로 난 당신들과는 같은 관람환경을 공유하기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들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좋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견〉을 제외한 두 편의 영화(〈블루벨벳〉과 〈캐리〉)는 이미 보고 또 보고 십여 번을 넘게 본 영화지만 좋은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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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가 가득 피어난 반지하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 거대한 스팀장치에 내 몸이 삶아져가고 있다는 환상을 떠올리며 문뜩 서울 전체의 전기가 다 끊어져 버리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전기가 끊김으로 해서 단지 불편함만이 올까? 냉장고는 온장고로 바뀌어버리고 에어컨이며 선풍기는 죽어버려 뜨거운 열기조차 내뿜지 못하고…아니다 어제부로 김치를 다 먹어버린 내 냉장고야 멈춰도 그만이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는 내 방에서 그런 것까지 걱정할 팔자는 아니다. 대신 물이 멈춘다.
전기가 멈춘다는 것은 상하수도 시설이 완전히 멈춘다는 것이다. 펌프로 가동되는 이것들은 사실 우리의 생존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다. 먹는 수돗물로 똥과 오줌을 처리하는 우리 현대인(?)들은 상수도가 멈춘 시점부터 똥을 내려 보낼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단 일주일의 단수로 서울 시내는 그야말로 온갖 오물로 뒤덮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똥오줌은 온갖 바이러스의 집결지이고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쏟아져 나온 온갖 오수로부터 발생할 돌림병에 사람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 대량의 사망자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현대인은 이삼십년 전의 사람들과 달리 인분과 생활오수를 퇴비화 하는 방법까지 모두들 잊어버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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