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Monthly Archive
『경제학-철학 수고』 칼 마르크스 지음 |강유원 옮김 | 「이론과 실천」
몇 년 전 모 게시판에서 ‘양극화’라는 말을 꺼냈다가 비웃음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 그 게시판의 대부분의 이들은 매우 진지하게 ‘양극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자신의 위치가 점점 불안해지고 하락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담 스미스는 자본을 “축적되고 저장된 일정량의 노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있어 “자신의 노동을 빌려준다는 것은 자신의 노예생활이 시작됨을 말한다. 노동의 재료를 빌려준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정초(定礎)한다는 것을 말한다.”(p52) 자본가에게 축적되고 저장되는 것은 ‘자본’이지만 노동자에게 축적되고 저장되는 것은 ‘소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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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6 Feb 2007
잡담.1 Comment
[채식,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힘!] ― 달군님, 「프레시안」
술을 먹거나, 밥을 먹을 때 가끔 “난 풀이 좋아”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리고는 한 번씩 거기에 덧붙여 ‘육식’에 대한 입장을 살짝 곁들이기도 한다. ‘채식’에 대한 내 입장을 아주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알아듣는 이는 거의 없다. 물론 난 고기를 많이 먹는다. 내가 즐겨 먹는 김치만두나 야채만두에는 김치나 야채보다 고기가 더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더군다나 술자리의 절반을 차지하는 ‘삼겹살’은 내가 육식의 세계화에 정확히 일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렇다. 나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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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4 Feb 2007
영화[4] Comments
《300》 홈페이지
‘잭 스나이더’의 전작 《새벽의 저주 Down of the Dead》의 시작은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 가운데 가장 무서웠던 영화였다. 빨라진 좀비만큼 일상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뀌는 장면은 볼 때마다 소름끼친다. 물론 이 영화는, 매우 유쾌한 영화 《슬리더 Slither》의 감독 ‘제임스 건’의 각본도 빼놓을 수가 없겠다. 그리고 잭 스나이더의 다음 영화는 ‘프랭크 밀러’가 ‘페르시아 대 그리스’의 전쟁을 다룬 《300》이다.
출퇴근 길에 ozzyz군에게 얻은 ‘톰 홀랜드’의 『페르시아 전쟁』(이순호 옮김 「을유문화사」)을 틈틈이 읽어나간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었던 부분은 《300》의 예고편에 등장하던 페르시아 함대가 ‘마라톤 평원’에 집결한 이후 아테네의 중장보병이 페르시아 군을 향해 진격하던 순간까지다. 그리고 그 직전에, 영화의 예고편에 나오는 페르시아의 사신을 우물에 차넣는 결정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물론 실제로는 차넣었는지 던져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잭 스나이더와 프랭크 밀러의《300》을 위해서 읽기 시작했던 『페르시아 전쟁』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흥미를 더해간다. 페르시아 전쟁은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최초로 벌어진 동서양의 충돌이기도 하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21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 시스템의 기준이 되는 ‘민주주의’의 발생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대항한 최초의 전쟁이 벌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불과 십수 년 전에 만들어진 민주주의를 마치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것처럼 인민(demos)의 이름으로 싸우는 아테네와 두 명의 참주(僭主) 아래 가장 강력한 군사국가를 완성했던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물론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지나친 오버일 것이다.
세인들에게 두고두고 칭송을 받았던 스파르타 300인의 결사항전은 그 엄청난 이야기와 함께 박정희의 유령 ‘국민교육헌장’을 다시 일깨울 수도 있다. ‘전 국민의 총화단결’ 운운하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처럼 시대가 변해도 항상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건 정말로 끈질긴 유령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함께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 스나이더의 《300》은 가장 기다려지는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환상’을 제외하고는 인간들의 실제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
Mon 12 Feb 2007
잡담.[4] Comments
‘난 정말 아는 게 없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 정말로 머리가 텅 비어 버렸다. 1월 초에 십여 장쯤 옮겨 적던 『경제학―철학 수고』를 집어던져 버리고는 한 달 동안 생각을 멈춰버렸다.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고 해서 머리가 비어 버리는 것은 아닐 텐데 물 빠진 스펀지처럼 쪼그라든 뇌를 느끼다 보니 오히려 잘된, 반성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긴 반성도 아는 게 있어야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곧 글로 밥 벌어먹는 일을 하게 되는데, 이게 나를 속이는 짓인지 아니면 그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편일지는 아직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하는 일이 ‘부끄럽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른 일이 아니란 것이다. 변명을 하지 않는다면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고 변명을 하겠다면 적어도 거짓은 말하지 않아야겠다.
Sat 10 Feb 2007
영화[2] Comments
『위대한 영화』, 로저 에버트, (최보은,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책을 펼치며 ‘차례’에서 감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비록 백 편의 영화 가운데 보지 못한 것들이 많을지라도 그 수많은 책과 글들에서 다뤄지는 ‘위대한 영화’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나 또한 김영진 씨처럼 ‘로빈 우드’로 인해 ‘로저 에버트’에게 편협한 감정을 가졌던 한 사람이고, 또 그의 글을 처음 접하기도 하지만 단지 눈물을 글썽거리게 하는 영화의 목록만으로도 벌써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노스페라투》에서 내가 왜 흑백영화에 더 끌리는가를 아주 간결하게 말해준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꿈은 한국의 유행어 ‘꿈은 이루어진다.’ 따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유행으로서의 꿈은 ‘칼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