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대선시기만 되면 등장하는 헛소리이기는 하지만 점차 돈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는 것을 느낀다. 3불 정책의 폐지도 나왔고, 특목고의 폐지도 나왔다. 다 지난 시절에 들어본 얘기이기도 하다. 이 수많은 목소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돈의 관리를 받을 것인가, 국가의 관리를 받을 것인가’라고 할 수 있겠다. 정작 관리 받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없거나 아주 잠깐 등장한다(어떤 기사였지는 찾지도 못하겠다). (more…)
2007년 4월
모든 것은 그것을 대하는 자의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이 ‘태도’란 것이 만만한 게 아니다. 태도는 ‘쌓는다’라는 말과도 관련되어 보인다. 이 쌓여서 나오는 태도가 ‘몸에 익은’ 것이다. 몸을 통해 드러나는 행위라면 그 마음에 쌓인 게 그만큼 많음을 드러낼 수 있겠으나, 그 태도가 눈꼴 사나울 때는 그 마음에 쌓인 수많은 것이 어떠한 것일지 대충 짐작이 간다. 대체로 많다고 느껴(연륜)지는 것은 한 줌의 뇌 부스러기일 뿐이다. 또한, 대체로 많이 쌓였다(학식)고 보이는 것도 같은 것들만을 쌓아 올려 결국 한 줌의 이론 따위로 모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 얄팍하지만 단단하게 굳은 태도는 다른 사건들을 쉽사리 규정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많은 꺼리들에 대한 판단이 지 마음대로인 것은 대체로 이 얄팍하지만 단단하게 굳은 인식에서 나올 것이다. 이 굳은 인식을 조금 부드럽게 녹여내는 데만 해도 평생이 걸릴지 모른다.
“그가 어디 출신이든 간에 포부가 큰 방송인[신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지만]은 방송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모두 자신이 고르기 때문에 전형적으로 좌파 자유주의적 견해를 받아들인다. 여기에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방송에 올리기 위해서, 방송인들은 의식을 했든 안했든 방송 뉴스의 문화를 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속 깊이 자신의 동료와 상사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하는, 사회적 상승의 야망을 가진 기자는 무엇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무엇이 책임 있는 언론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흡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텔레비전 방송 문화가 자유주의적이기 때문에 기자들은 당연히 무엇이 뉴스인지―궁극적으로 언론에 있어서 가장 이데올로기적인 질문―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전적으로 자유주의 좌파적인 가정, 경향, 그리고 기대로부터 얻게 된다. 그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규정하는, 즉 자신들이 내린 결론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전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화적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대단히 힘들다.” [정보불평등 p45]
배가 산으로 가는 게 그토록 두렵다면, 도대체 땅속으로 다니는 수레에는 매일매일 어떻게 탄단 말인가?
먹고살려고 어쩔 수 없이 타고 다닌다.
덧: 그런데 곽승준 교수 뭔가에 많이 삐졌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