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가을날의 재회]

《데드맨》과 《판의 미로》 등등

또한 프리츠 랑도 만난다.

[프리츠 랑의 아메리카 특별전]

남의 글과 자신의 생각을 동일시하다가 다른 생각을 내뱉었다 해서 분노하는 것, 이해할 수 없다.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린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

1.
초·중·고 12년에 대학을 마쳤다면 적어도 ‘받아쓰기’할 실력은 갖췄다는 말이다. 받아쓰기는 누군가가 하는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고스란히 받아쓰는 걸 말한다. 어떠한 가감도 없이 말 하나하나를 글로 옮기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고 여기서 책을 읽는 힘이 나올 것이다. 이 받아쓰기가 되지 않아 남이 한 말에 더할 것 더하고, 뺄 것 빼고 하다 보면 결국 텍스트란 것 자체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삶 자체가 우스워지는 것이다.

2.
꿈에 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그들보다 몇 배는 더 큰 개와 즐겁게 노는 꿈을 꾸었다. 거대한 개꿈이렷다.

3.
일요일 밤 11시 반에 딱 한 번 상영하고 마는 《조디악》을 봤다. 잘 만든 영화다. 부시고 터트리는 것 없이 2시간 반 동안 단 한 번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재밌는 영화가 잘 만든 영화인 것은 아니지만 잘 만든 영화는 재미있다. 물론 사람들은 ‘재미’라는 것을 아주 협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알리바이를 만듦으로서 어른이 된다.

[진정한 평론가란? - 씨네21]

오늘날 영화에 관한 모든 글에는 ‘평론’이라는 딱지가 붙여진다. 나와 같은 애송이가 영화를 통해 뭔가를 주장하고자 했던 저열한 글은 물론이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진 어중이떠중이의 글에도 ‘평론 잘 읽었습니다’란 덧글이 보태진다. 평론은 “사물의 가치, 우열, 선악 따위를 평가하여 논함”이라 정의된다. 가치판단, 도덕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평론’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평론의 역할”이란 무색해지고 만다. 이성을 지닌 존재가 대상에 부여한 가치를 따져묻고, 우열을 가리고, 선악을 평가하여 논리적으로 서술한 의견이 곧 평론이므로, 평론은 한 개인의식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쯤 되면 평론은 “고작 취향에 개입하는 권력”이란 말이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more…)

Next P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