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강의]
이 책은 단테의 『신곡』만이 아니라 ‘고전’이라 불리는 모든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물론 끝이 정해진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상 불가능한 바람일 것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골로 가다’라는 말은 ‘골짜기로 간다’는 말이며, 한국전쟁의 기억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학살의 기억—남·북한 그리고 미군에 의한—을 강조하면서 상대를 협박하는 이러한 용례는 사회와 언어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나를 보여준다.
최근의 연구서인 『한국전쟁과 집단학살』, 『전쟁과 기억』 등은 이 시기 ‘골로 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한홍규의 『대한민국사』는 잘린 목을 고스란히 담은 친절한 사진으로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골로 가는 것’의 끔찍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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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쯤, 나는 삼성물건 안 쓴다는 말에 돌아온 대답들은 대개가 ‘그럼 어떻게 살려고’라는 말들이었다. 실제로 내가 쓰는 전자기기에 삼성 반도체 하나 안 달린 기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없는 놈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대접받고 사는 길은 입을 모아 반대를 외치는 길 뿐이다. 일종의 상징적 행위인 것이다.
‘삼성 불매’, 꽤 오래된 말이지만 요즘 들어 몇몇 사건으로 각광받는 듯하다. 이를테면 ‘겪어보니 알겠다.’ 이 말 자체는 정말로 씁쓸한 말이다. 삼성 SDI가 벌였던 작태 등은 ‘내 일이 아니었을 뿐’이니 말이다. 요즘 누가 하중근을 기억하나. 불과 일 년도 되지 않았다. 그 잘난 이랜드 리본도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태안 리본으로 바꿔 달았을 뿐이다.
‘그걸 이제야 알았나’라는 말이 있다. 빈정거리는 말이지만, 정말로 열 받았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더는 ‘불매’라거나 ‘반대’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잘 하지 않는다. 내가 소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이후로 사람들이 나를 소개할 때 쓰는 말은 ‘이 사람 힌두굡니다’라는 말이다. 소고기 반대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거니와 그 우스꽝스러움을 알리고 싶으나 설명하기는 싫은 까닭이다.
어떤 사태에 대해 따져보지 않고 그저 주워 넘기는 사람들이 잘 표현하는 것이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다. 그것을 대다수 사람이 겪고 알게 되었을 즈음에 그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걸 이제야 알았나라는 말에는 어떤 사태를 겪지 않더라도 꼼꼼히 따져보고 되짚어 봤을 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라고 인간인 것이지 겪어봐야만 안다면 그게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세계는 어떻게 구원의 가능성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벨 페라라가 만든 『악질 경찰』을 언급할 때 가장 흔한 정의로 ‘구원과 속죄(이 순서가 뒤바뀔 때 전혀 다른 영화를 설명하는 것이 된다)’를 말한다. 구원과 속죄는 개인의 내면에 관계한 것이라 여겨지므로 대개 이 영화에 관한 접근은 개인화된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리고 개인화된 문제란 인류의 역사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자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이다. (more…)
: 십수 년 만에 다시 보는 《복수의 립스틱》, 마치 《캐리》의 아벨 페라라 버전을 보는 듯하다.
: 《R-Xmas》, 한 번 더 봐야 하거나 혹은 더는 볼 필요 없는 영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작성한 문구 “페라라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선악의 경계를 보여준다.”는 문장은 딱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페라라의 전작들을 예상하고 간 관객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이건 틀린 게 아니라 너무 ‘다르다.’
스포일러란:
“엄마, 아기는 어떻게 나와요?”
“아가, 그것은 스포일러란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점점 ‘찌질해져’만 가고, 영화를 만드는 상업영화 감독들은 이 ‘찌질함’에 맞추고자 온통 한방에 집중한다. 영화 산업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영화 예술도 그야말로 거대한 시궁창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호미사이드》는 ‘비둘기 모이회사’가 없더라도 그 자체로 뛰어난 스릴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