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정당투표는 진보신당을 찍기로 했다. 내가 바라는 정당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나마 내가 바라는 이익을 조금이라도 대변하고, 그것을 구조화하고자 노력할 집단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노력이 실현 가능할 집단이 현재로서는 진보신당뿐인 듯하다.
2008년 3월
돌고래가 향유고래 두 마리를 구조했다는 소식이 있다. 이들은 휘파람 소리와 딸깍거리는 소리로 서로 소통해서 향유고래의 안락사라는 비극을 면했다고 한다.
기사를 읽고 문뜩 개별 존재가 그 목적에 걸맞도록만 행위 한다면 세상은 더욱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를테면 자신의 쓰임에 꼭 알맞은 위치를 찾는 것이다. 다음은 비록 천대받지만 그래서 여전히 쓰임이 있을 대표적인 두 가지다. (more…)
일본 ‘헌법 9조’ 개정에 관한 얘기는 결코 식었던 적이 없다. 1945년 이후 일본 우파는 헌법 9조를 없애고자 노력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이 법을 지키고자 싸워왔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싸움이 그렇듯이 헌법 9조를 없애는 것은 우파의 승리를 말하지만, 헌법 9조를 지키는 것은 ‘지속할 싸움’임을 의미한다. (more…)
가장 더딘 변화를 보이는 공간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그건 서부다. 그건 마치 존 포드의 공간을 휩쓸며 다니는 존 웨인의 주변과 브로크벡 마운틴의 언저리가 그다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와도 같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한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소품은 아날로그 수신기뿐이지만, 영화 속에 정확히 도장을 찍어 준 ‘1980년’에 굳어버린 비석이 없다면 우리는 영화의 배경을 6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서 추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이 뚜렷이 알 수 있도록 ‘비석’을 한 화면에 잡는다. 바로 여기서 관객은 이들 허구의 인물들이 현실에 존재할지라도 이미 늙었거나, 혹은 늙어 죽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뜻은 아니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