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그것을 귀찮음으로 인식하여 그 화를 폭력이라는 행위로 드러내는 행동을 굳이 이해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다.
인정은 하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2008년 5월
느지막이 출근한 직장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여기서 이렇게 일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참여하자는 얘기다. 얼씨구나 싶어 내 한목소리를 더 보탰다. 다들 시간 날 때마다 집회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모두가 함께 참여하자는 얘기는 처음이다.
사실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무언가는 지극히 적다. 그래서 약하디 약한 개인들은 서로 힘을 보태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개인은 사라지지만 절대적인 힘만이 남아 모든 것을 파괴하는 손오공의 원기옥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전체주의의 기본 요건이다. 내가 ‘대~한민국’이란 구호에 토악질을 해대는 이유다.
개인들이 힘을 보태는 이유는 그들 각자의 개별적 삶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을 내리누르는 힘이 개별적인 삶을 우그러뜨리고 나 없는 공허한 집단으로 뭉뚱그리려 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개인이 없다면 민주주의고 나발이고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붕괴를 막고자 불도저식 시스템에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나라는 개인의 힘은 지극히 약하므로 나와 너는 힘을 보탠다. 그것이 바로 헌법에서 규정한 집회와 결사의 자유다.
우리가 세상을 돌아보지 않던 사이에 수많은 이가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사람(비정규직)’이 되었고,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던 사이에 앞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할 학생들은 이제 빌어먹을 신세가 될 참이다. 정부의 예고대로 이제 비정규직은 확대될 참이며, 전기, 가스 그리고 물까지 민영화될 전망이며, 의료보험 역시 위태위태하다. 자 이제 우리 앞에는 FTA가 놓여있으므로 실상 선행되는 모든 사태는 FTA를 위한 워밍업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야 할 공간까지 모두 삽으로 파헤쳐질 예정이라 집 없는 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more…)
언젠가 대학로 집회 현장에 있던 KTX 승무원을 가리키며 ‘저것들 다 비정규직이야’라고 낄낄거리던 ‘대학생’이 있었다.
축하한다. 이제 니들도 다 ‘비정규직’이다.
오늘날 극장은 연극, 영화, 공연 등 문화 활동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은 즐거움을 얻으려는 행위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극장은 오늘날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스인들에게 극장은 도시국가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특히 도시국가가 나서서 공연관람을 장려했다. 페리클레스가 특별 창구를 마련해 최하층 빈민에게는 국가에서 입장료를 부담하도록 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