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김종훈이 ‘QSA’로 사기 치는 사이 한국의 촛불이 미국에서 쇠고기 안전성 논란을 촉발하고 있다고 한다. 프레시안의 지적처럼 QSA는 ‘참 잘했어요’ 도장과 같다. 그래서 ‘국민’은 더 열 받은 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가능한 패가 끼어들었다. 미 쇠고기 안전성을 위한 ‘신속검사’의 도입이다. 물론 이 검사 역시 완벽하진 않다. 그러나 EU에서는 이 검사를 통해 1,117건의 광우병을 찾아냈다. 적어도 수긍할만한 안전성 검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 농무부가 소비자연맹의 요구를 받아들여 신속검사를 제도화하게 된다면 처음에 촛불시위를 촉발케 했던 근거는 대부분 희석될 것이 분명하다. 촛불의 중심 요구가 ‘정권퇴진’이 아니라면 말이다. (more…)
예전 ‘무풍지대’에서나 보던 정치깡패(용역이라고도 읽는다)들이 등장했다. 황당+분노+짜증 등등, 이 사태를 어찌 표현해야 하나. 그놈들의 사부 유지광이도 흙속에서 황당해할 사태다.
어쩌면 우린 4.19+6.10+6.8을 동시에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촛불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회에서 촛불을 들었던 것은 효순이, 미선이 때 다른 사람의 촛불을 맡았던 것 말고는 없다. 그런데 촛불의 의미가 바뀌었다. 어쩌면 내 인식이 변한 것일 수도 있다. 읍소라는 의미에서의 촛불이, 빛을 밝힐 테니 내 말을 똑똑히 들으라는 의미로 변화했다. 이처럼 말이 힘을 얻는 시대에 등장한 더러운 주먹은 단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주먹 뒤에 서 있는 자들은 여전히 이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사태를 꼼꼼히 따졌을 때야말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전시대와 작별을 고할 토대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