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쇠고기는 생존권 투쟁이 아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생존권 싸움이다. 순간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투쟁이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 내 아이가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집에서 생활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문제다. 자식들의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 먹고 살 길을 걱정해야 하는 문제다.”

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

김종훈이 ‘QSA’로 사기 치는 사이 한국의 촛불이 미국에서 쇠고기 안전성 논란을 촉발하고 있다고 한다. 프레시안의 지적처럼 QSA는 ‘참 잘했어요’ 도장과 같다. 그래서 ‘국민’은 더 열 받은 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가능한 패가 끼어들었다. 미 쇠고기 안전성을 위한 ‘신속검사’의 도입이다. 물론 이 검사 역시 완벽하진 않다. 그러나 EU에서는 이 검사를 통해 1,117건의 광우병을 찾아냈다. 적어도 수긍할만한 안전성 검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 농무부가 소비자연맹의 요구를 받아들여 신속검사를 제도화하게 된다면 처음에 촛불시위를 촉발케 했던 근거는 대부분 희석될 것이 분명하다. 촛불의 중심 요구가 ‘정권퇴진’이 아니라면 말이다. (more…)

예전 ‘무풍지대’에서나 보던 정치깡패(용역이라고도 읽는다)들이 등장했다. 황당+분노+짜증 등등, 이 사태를 어찌 표현해야 하나. 그놈들의 사부 유지광이도 흙속에서 황당해할 사태다.
어쩌면 우린 4.19+6.10+6.8을 동시에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촛불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회에서 촛불을 들었던 것은 효순이, 미선이 때 다른 사람의 촛불을 맡았던 것 말고는 없다. 그런데 촛불의 의미가 바뀌었다. 어쩌면 내 인식이 변한 것일 수도 있다. 읍소라는 의미에서의 촛불이, 빛을 밝힐 테니 내 말을 똑똑히 들으라는 의미로 변화했다. 이처럼 말이 힘을 얻는 시대에 등장한 더러운 주먹은 단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주먹 뒤에 서 있는 자들은 여전히 이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사태를 꼼꼼히 따졌을 때야말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전시대와 작별을 고할 토대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